BOOK LOG/문장 큐레이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 프랑수아즈사강 / 발췌록 / 필사 / 느낀점

this_summer (이여름) 2023. 3. 28. 21:3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전혀 다른 두 사랑 앞에서 방황하는 폴의 심리를 중심으로, 그녀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연결된 로제와 시몽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프랑스 문단의 '매력적인 작은 괴물'이라 불리는 사강이 스물넷의 나이에 쓴 이 작품은, 일상을 배경으로 난해하고 모호한 사랑의 감정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실내장식가인 서른아홉의 폴은 오랫동안 함께 해온 연인 로제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앞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폴과 달리, 구속을 싫어하는 로제는 마음이 내킬 때만 그녀를 만나고 다른 여자로부터 하룻밤의 즐거움을 찾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로제를 향한 폴의 일방적인 감정은 그녀에게 깊은 고독을 안겨준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몽상가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시몽과 만난다. 시몽은 폴에게 첫눈에 반해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고, 그런 시몽의 태도에 폴은 불안감과 신선한 호기심을 느낀다. 젊고 순수한 청년인 시몽으로 인해 폴은 행복을 느끼지만, 그녀가 세월을 통해 깨달은 감정의 덧없음은 시몽의 헌신적인 사랑 앞에서도 그 끝을 예감하는데….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08.05.02

#1. 사랑의 덧없음

57p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을까?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 뿐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좋은 지표가 되어준다.

▶ 그럼에도 그녀는 결국 로제를 선택했다. 그녀가 의심해봐야할 것은 '로제를' 사랑한다의 "로제를" 보다도, "사랑한다" 그 자체였어야 하지 않을까? 때론 목적어보다 동사가 더 진실이 아닐 때가 있듯이. 그리고 그것을 시몽과의 경험을 통해 폴은 깨달았을 것이다.

역자의 말
사강의 작품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이다. 실제로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중략)
페스트균처럼 뻔한 결말로 독자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멜로드라마에 머무는 대신, 갑자기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지는 각성의 '엔딩'을 선사하고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강을 다시 읽는다.

▶ 다시 로제에게 돌아간 폴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독하게 하는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 폴은 다시 외로워질테니까. 그런데 사강이 말하고자 하는게, 그게 사랑의 덧없음이라면 조금은 알겠다. 폴이 선택한 것은 불안하고 유한할 것 같은 시몽의 사랑이 아니라 로제를 기다리며 쌓아올린 자신의 시간과 열정이다.


#2. 안정적인 관계 안에서 서로가 갖는 감정

86p 로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고 자기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었다. 그가 확신하는 유일한 것은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폴의 사랑이었고 몇 년 전부터 그녀에게 집착해온 자기 자신의 마음뿐이었다.
139p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 사람의 자유는 불안 속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안정과 확신 사이에서 그제야 피어나는게 자유다. 그러므로 로제는 폴과의 관계를 벗어나면서부터 자유를 잃는다. 그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비단 로제만이 아니다. 폴 또한 그 속에서 열정을 되찾는다. 고독한 가운데에서 켜켜이 쌓아온 자신의 노력과 시간들을 로제를 향한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품는다. 이 기묘한 관계는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서로를 갉아먹기도 한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처음 느꼈다.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이고 행복한 관계는 없다. 그 사이에서 서로 필요한 감정을 찾아 이득을 취하며 유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