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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LOG/문장 큐레이션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 옮긴이, 이창실 / 필사 / 발췌록 / 느낀점

by this_summer (이여름) 2023. 4. 17.
너무 시끄러운 고독
현대 체코 문학의 거장 보후밀 흐라발의 장편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저자 본인이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 선언할 만큼 그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며 필생의 역작이라 불릴 만한 강렬한 소설로, 많은 독자와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삼십오 년간 폐지 압축공으로 일해온 한탸라는 한 늙은 남자의 생애를 통해 책이 그저 종이쪼가리로 취급받게 된 냉혹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정신 상태를 섬세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끊임없이 노동해야 하는 인간, 그리고 노동자를 대신하는 기계의 등장 이후 인간 삶의 방식의 변화, 인간성과 실존에 대한 고뇌 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인 한탸는 어두침침하고 더러운 지하실에서 맨손으로 압축기를 다루며 끊임없이 쏟아져들어오는 폐지를 압축한다. 천장에는 뚜껑문이 있고 그곳에서는 매일 인류가 쌓은 지식과 교양이 가득 담긴 책들이 쏟아져내린다. 니체와 괴테, 실러와 횔덜린 등의 빛나는 문학작품들은 물론, 미로슬라프 루테나 카렐 엥겔뮐러가 쓴 극평들이 들어 있는 잡지들까지. 한탸의 임무는 그것들을 신속히 파쇄해서 압축하는 일이지만 그는 파괴될 운명인 폐지 더미의 매력에 이끌린다. 그는 쏟아지는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며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다. 한탸는 마치 알코올처럼 폐지 속에 담긴 지식들을 빨아들인다. 귀한 책들은 따로 모으다보니 그의 아파트는 수톤의 책으로 가득차 있다. 여차하면 무너질 듯이 아슬아슬하게 쌓인 책들은 그의 고독한 삶에서 나름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즐거움이다. 마치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끊임없이 노동을 지속해나간다. 그 일을 견디려면 매일 수리터의 맥주를 마셔야 할 정도로 고되지만, 그는 삼십오 년간 그 일을 해왔으며, 퇴직하게 된다 해도 압축기를 구입해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 일을 하기를 꿈꾼다.
저자
보후밀 흐라발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6.07.08


한 줄 평

시대와 함께 저물어가는 사람이
느낄 상실감과 허무에 대한 이야기로
나의 시대를 되돌아보다.



9p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16p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18-19p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26p

그 무렵 압축기로 책들을 압축하노라면, 덜컹대는 고철의 소음 속에서 20기압의 힘으로 그것들을 짓이기고 있노라면, 인간의 뼛조각 소리가 들리곤 했다. 마치 고전 작품들의 뼈와 해골을 압축기에 넣고 갈아댄다고나 할까. 탈무드의 구절들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독파> 미션2 :: 위 문장이 담긴 사진과 내가 최상의 자신이 되도록 짓누르는(현재형) 또는 짓눌렀던(과거형)것들에 대한 소회 또는 사유를 남겨주세요

2017년 4월쯤, 자투리 시간 하나 남기지 않고 긁어모았다. 암기하고, 문제풀고, 이해가 안되는 것은 끊임없이 그려보며 익혔다. 하지만 최상의 내가 되기 위해 짓누를 수 있는 시간은 딱 3개월밖에 안됐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년 6개월이 걸리는 시험에 딱 3개월 열심이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1년을 더했지만 포기했다. 그 포기 덕분에 새로운 길 위에서 다른 길을 걷고있기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그 3개월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했던 빛나는 순간이 되어있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 해준 말이 떠오른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100%이상을 해서 이뤄질 수 있는 꿈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고. 당시엔 오기가 생겨 반발심이 생겼었다. 하지만 현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80%를 들여서 이 곳에 왔고, 최대 80%의 에너지만 쓰면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도 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계속해서 짓눌리는 삶을 살기보다 그런 순간도 내게 있었던 현재의 인생이 꽤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39p

프라하의 경우, 건문들의 정면이나 주민들의 머릿속이 그리스 정신으로 넘쳐나다면, 그건 오로지 수많은 체코인들의 뇌를 그리스와 로마로 가득 채우는 인문고등학교와 문과대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71 칸트의 책에서 찾은 문장

“여름밤의 떨리는 미광이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하고 달의 형태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나는 세상에 대한 경멸과 우정, 영원으로 형성된 고도의 감각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84p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인간적이었다……

85p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91p

저 거대한 압축기가 다른 모든 압축기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에도 상이한 유형의 사람들과 작업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었다. 실수로 그곳에 버려진 책들과 사소한 기쁨도 끝이었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처럼 늙은 압축공들이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었으니까. 매 꾸러미에서 책을 한 권씩 골라 보너스로 준다 해도 나는 거기서 끝장이었고,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우리가 종이 더미에서 구해낸 장서들도 모두 끝장이었다.


96p

내가 앞으로 달려나갈수록 책들은 뒤로 물러났다.


98p

부브니의 거대한 압축기와 청년 사회주의 노동단원들 그리고 그들의 그리스 여행에 심적으로 팽팽히 대립해 있는 나는 멍청한 인간이었고, 내 작은 압축기보다 더 미미한 존재였다.


104p

책들에 둘러싸인 나는 책에서 쉴새없이 표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세지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책들이 단합해 내게 맞섰는데 말이다. 반면 책을 혐오한 만차는 영원토록 그녀에게 예정된 운명대로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여인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돌로 된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했다.

<독파> 미션6 :: 책을 혐오했던 만차가 한탸가 만난 사람들중에 가장 멀리 간 사람이, 상상도 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책 속에 답이 있다고, 그 안에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책 속에 파묻혀살았던 이에게 남겨진 것은 허무이며, 책을 멀리했던 이에게 남겨진 것은 저택과 여유였다. 그 둘의 차이를 먼저 살펴보자.
한탸가 아는 만차의 굴욕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녀는 거기서 굴복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고, 자신을 위한 이득이라면 취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반면, 한탸는 소장에게 겪는 굴욕을 그대로 제 안으로 끌어 들여왔다. 불쾌한 감정들만이 켜켜이 쌓여가게 내버려둔 채,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았다. 맞서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인간이 생물학적인, 근원적인 이유로 치욕을 겪은뒤에 명예를 얻는다”라는 노자의 문장 처럼, 만차는 치욕뒤에 명예를 얻었다. 그냥 얻어지는 명예가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가 있었다. 한탸는 치욕 뒤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탸와 만차의 사례는 책만 읽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와 책은 읽지 않았으나 끊임없이 움직였던 자의 차이로 귀결된다.
이 책에선 역설적이게뎌 책 속에 답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책을 책으로만 보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책 읽고 문장 몇개 수집해 덮어두는 나의 어제를 반성하게 된다.

106p

삼십오 년을 잉크와 얼룩 속에서 일해온 내가, 더럽고 냄새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선물과도 같은 멋진 책 한 권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매 순간 살아오 내가, 이제 비인간적인 백색 꾸러미들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기에 되다니!

‘내’가 지켜오던, 의미있다고 생각되었던 삶 희망과 꿈이 사라진 것이다.

113p

내가 신봉했던 책들의 어느 한 구절도, 내 존재를 온통 뒤흔들어놓은 이 폭풍우와 재난 속으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중략) 그저 잠이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 존재를 오롯이 덮친 모욕으로 말미암아 실성해버린 걸까?


115p

한 변이 적어도 오백미터는 되는 저 정육면체에 프라하 전체가 나와 함께 압축되어있다. 평생에 걸쳐 내 안으로 스며들었던 텍스트들과 내 모든 사고도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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